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 <록키>시리즈에 투영된 스탤론의 부침 -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

허지웅 / 문학동네


<록키> 시리즈에 투영된 스탤론의 부침


 시합을 만류하는 에이드리언에게 발보아는 말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의 목적은 오직 하나, 15라운드를 끝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는 끝내 경기에서 패배하지만 결국 승리보다 더 값진 걸 거머쥔다. 그건 이 영화의 미덕이자 영리한 점이었다. 당시의 젊은 관객들은 승리 자체보다 그 과정의 정당함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는 걸 좋아했다. 덕분에 스크린 역시 반-영웅 캐릭터들이 온통 수놓고 있었다. 스탤론 스스로 반-반-영웅이라고 부르는 발보아는 대중들이 단연 환호할 만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록키> 이후 스탤론의 행보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관계없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건 마치 <록키>로 순식간에 이뤄놓은 커리어를 차례차례 망가뜨려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짓밟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록키>에서 마지막 15라운드 종이 울렸을 때 아폴로 크리드는 "재시합은 없어!"라고 말하고 록키 역시 "동감이야"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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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

허지웅 / 문학동네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세계는 늘 이와 같은 화두를 관통해왔다. 그의 초기작이자 출세작인 <이나중 탁구부>는 막무가내의 화장실 개그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조차 정수는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막연한 동경과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소년들의 왁자지껄한 난장 이후에 찾아오는 덧없음에 있었다.

 

 초창기 후루야 미노루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무책임한 어른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으되 자기 힘으로 삶을 일구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곤 했다.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그렇다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었다. <크레이지 군단>은 <이나중 탁구부>에서 <그린힐>에 이르는 초기 3부작 가운데 그러한 메시지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 역작이었다.주인공 형제가 아저씨에게 두드겨맞고 실컷 눈물을 쏟은 다음 얼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는 <크레이지 군단>의 마지막 한 컷은 영화 <그래비티>에서 지구 위를 두 다리를 버티고 일어선 샌드라 블럭의 마지막 장면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 이야기다. 그런 게 있다면 누를거냐는 질문이다. 그는 우리 사람에 인생을 리셋하는 버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역설한다.


아무튼 산다는 건 액정보호필름을 붙이는 일과 비슷한 것이다. 떼어내어 다시 붙이려다가는 못 쓰게 된다. 먼지가 들어갔으면 들어간 대로, 기포가 남았으면 남은 대로 결과물을 인내하고 상기할 수밖에 없다.

2013.11


버티는 삶에 대하여 中, 후루야 미노루 작품 속의 인생 리셋 버튼 -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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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글 김중혁/소설가

 

 

 책을 펴낼때 마다 작가의 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딱히 쓸 얘기가 없었다. 작가의 말이라는 게 죽기 직전의 사형수에게 하듯 "자, 책을 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는건데, 할 말은 소설 속에다 다 했고, 마지막으로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랬다. 첫 번째 소설집 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작가의 말'에다 내가 좋아하는 사물들의 리스트를 적어놓는 것이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 아니지, 물면으로만 - 나를 도와주었던 사물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내 소설을 프린트해주었던 프린터, 내가 좋아하는 펜,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을 무순으로 적었다. 사물들의 이름은 책이 팔리는 동안 계속 추가됐다. 1쇄작가의 말에 사물의 이름이 30개 적혀 있다면, 10쇄 작가의 말에는 39개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앞으로도 책이 지속적으로 팔려서 사물의 이름을 계속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하,하. (점점 작아지고, 공허해지는 웃음)

 

두번째 책을 낼 때는 카세트테이프 표지를 작가의 말 자리에다 넣었고, 책을 새로 찍을 때마다 디자인을 바꾸었다. 쇄마다 카세트테이프 표지의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다르다. 이렇게 작가의 말을 다른 스타일로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작가의 말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정말 멋진 말을 할 수 있다면 몇 줄의 텍스트로만 마무리를 짓고 싶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보는 순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책의 부가적인 정보를 먼저 보는 편이다. 표지를 본 다음, 뒤표지를 본다. 뒤표지에는 대체로 추천사가 있다. 책에 대한 악평인 경우는 없다. 뒤표지에 책에 대한 신랄한 악평이 실린다면 참신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이 책을 절대 읽지 마라, 나의 진심이런 충고를 무시하고서라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래도 읽지마라"와 같은 악평이 실린다면 어쩐지 읽고 싶어지지 않나. 누군가 내게 추천사를 의뢰해 오면 한번 써먹어봐야겠다.

 

뒤표지를 본 다음에는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본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일수록 소설을 잘 쓰기 때문에 작가의 사진을 꼭 확인해야 한다. 이건 농담이고, 그 다음에는 작가의 약력을 확인한다. 나이가 많을 수록 소설을 잘 쓰기 때문에 약력을 꼭 확인해야 한다. 반만 농담이고, 다음에는 작가의 말을 읽는다. 작가의 말을 잘 쓰는 작가는 소설도 잘 쓰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다.

 

정이현 작가는 최근 펴낸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썼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 두렵다." 엄천난 분량의 장편소설을 펴냈으니 할 말이 많았을 텐데 - 아니, 오히려 할 말이 없었을라나 - 감상은 짤막하다. 짤막한 문장 속에서 결기가 느껴진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다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다. 오래전 여러 곳에 소설을 투고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했을 때, 작가의 말을 읽으면 위로가 됐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썼는지, 다 쓰고 나서 기분은 어떤지,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작업인지, 거기에 다 적혀 있으므로 위로가 됐다. 정이현 작가의 '작가의 말'을 읽고도 위로가 됐다. 나 역시 이곳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란 것이 애당초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세계에서 함께 두려워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됐다.

 

작가의 말은 아니지만 작가의 말에 버금가는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아직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았는데 - 안 읽은게 한두 권이냐마는 - 핑계를 대자면 마음에 드는 번역이 없어서였다. 몇 번을 읽으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김영하 작가가 번역해서 새롭게 펴낸 문학동네의<위대한 개츠비>에 다시 한번 도전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번역자의 말 때문이었다. 번역자의 말 서두에다 어째서 번역을 하게 됐는지를 써두었는데,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번역이라고 했다. 번역자의 말 제목도 멋지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곳에 대하여'.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욕망대로 움직이고, 결국 서로 어긋난다는 얘기고, 그래서 표적을 빗나가고, 그래도 어딘가에 가서 꽂힌다는 얘기다. 김영하 작가는 그게 문학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 생각에도 그게 문학인 것 같다. 표적에 정확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화살들이 모인 곳이 세상이고, 결국 빗나가는 게 인생이고, 그러나 결국 어딘가에 명중한 화살을 끝끝내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문학인 것 같다. 번역자의 말만 읽었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이미 읽은 것 같다. 번역자의 말이 이렇게 좋으니, <위대한 개츠비>는 당연히 좋을 작품일 것이다,라고 생각만 하고 아직도 읽지는 않았다.

 

이번 달 초에는 <펭귄 북 디자인>을 열심히 읽었다. 평소 펭귄북스에 관심이 많았고, 펭귄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앨런 레인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책을 샀다. 지난해 런던의 전시회에서 앨런 레인의 작품을 보고 난 다음 그의 팬이 돼버렸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커다란 총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표지였는데, 그 작품은 보이지 않더라. 제목이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디자이너 펠햄의 말이다.


"표지에는 반드시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방아쇠는 서점에서 서성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다. 두 번째 방아쇠는 시각적이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이 두 가지 방아쇠가 당겨지면 비로소 독자는 책을 집어 들고 구입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이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디자이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소설가에게 하는 말 같았다. 표지 대신에 소설이라는 단어를 넣어보았다. 소설에도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서성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는 방아쇠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꾸준히 책을 팔아서 작가의 말을 더 풍요롭게 꾸밀 수 있다. (하하하. 공허해지는 웃음). 앨런 레인을 겨냥했던 내 관심의 화살은, 많이 빗나가서 <펭귄 북디자인> 162페이지 펠햄의 말에 명중했다. 어디든 꽂히기만 하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김중혁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외 관심사가 워낙 많은 다재다능 소설가.

웹디자이너, 여행잡지 기자를 거쳐 2000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8년 단편 <엇박자 D>로 제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6년 소설집 <펭귄뉴스>, 2008년 <악기들의 도서관>을 펴냈다. 삽화가, 카투니스트로도 활약 중이고, 소설가 임연수, 시인 문태준과 함께 김천 3인방으로 통한다.

 

 

이달에 산 책

<제국의 통로> 조지 린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박천홍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마크 해던

  

 

 

BRUT 브뤼:트 Vol.012 (2010.05)

Column.zip / Book : 책과 연관된 여러 가지 쓸모없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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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번역 취향은? - '노인과 바다' 출판사별 번역.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영어 원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mingway)"

"He was an old man who fished alone in a skiff in the Gulf Stream and he had gone eighty-four days now without taking a fish"





문학동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 사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민음사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 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열린책들
"그는 걸프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


시공사(낙지회사)
"그는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지역에서 작은 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오늘까지 84일 동안 그는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다상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해서 살아가는 노인이었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벌써 84일이 지났다."





그리고, 추가하여,




구글 번역기

"그는 걸프 스트림에 작은 보트에 혼자 낚시질 그는 물고기를 복용하지 않고 지금 팔십사일 갔다 노인이었다."


팀 왈도

"그는 늙은 노인 잡는다 고기 혼자 돛단배에서 만 개울 그리고 그 갔다 84일 지금 고기 없다."


루리웹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낚시 하지마루요 야메로 이런 고기잡이는 모 야메룽다, 84일동안 호라 모 젠젠 물고기 안잡히자나 도시테 콘나 꼬라지니 낫탄다요"



<출처: 루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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