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글 김중혁/소설가

 

 

 책을 펴낼때 마다 작가의 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딱히 쓸 얘기가 없었다. 작가의 말이라는 게 죽기 직전의 사형수에게 하듯 "자, 책을 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는건데, 할 말은 소설 속에다 다 했고, 마지막으로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랬다. 첫 번째 소설집 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작가의 말'에다 내가 좋아하는 사물들의 리스트를 적어놓는 것이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 아니지, 물면으로만 - 나를 도와주었던 사물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었다. 내 소설을 프린트해주었던 프린터, 내가 좋아하는 펜, 내가 자주 들었던 음악을 무순으로 적었다. 사물들의 이름은 책이 팔리는 동안 계속 추가됐다. 1쇄작가의 말에 사물의 이름이 30개 적혀 있다면, 10쇄 작가의 말에는 39개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앞으로도 책이 지속적으로 팔려서 사물의 이름을 계속 추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하,하. (점점 작아지고, 공허해지는 웃음)

 

두번째 책을 낼 때는 카세트테이프 표지를 작가의 말 자리에다 넣었고, 책을 새로 찍을 때마다 디자인을 바꾸었다. 쇄마다 카세트테이프 표지의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다르다. 이렇게 작가의 말을 다른 스타일로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작가의 말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정말 멋진 말을 할 수 있다면 몇 줄의 텍스트로만 마무리를 짓고 싶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보는 순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책의 부가적인 정보를 먼저 보는 편이다. 표지를 본 다음, 뒤표지를 본다. 뒤표지에는 대체로 추천사가 있다. 책에 대한 악평인 경우는 없다. 뒤표지에 책에 대한 신랄한 악평이 실린다면 참신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이 책을 절대 읽지 마라, 나의 진심이런 충고를 무시하고서라도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래도 읽지마라"와 같은 악평이 실린다면 어쩐지 읽고 싶어지지 않나. 누군가 내게 추천사를 의뢰해 오면 한번 써먹어봐야겠다.

 

뒤표지를 본 다음에는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본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일수록 소설을 잘 쓰기 때문에 작가의 사진을 꼭 확인해야 한다. 이건 농담이고, 그 다음에는 작가의 약력을 확인한다. 나이가 많을 수록 소설을 잘 쓰기 때문에 약력을 꼭 확인해야 한다. 반만 농담이고, 다음에는 작가의 말을 읽는다. 작가의 말을 잘 쓰는 작가는 소설도 잘 쓰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다.

 

정이현 작가는 최근 펴낸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썼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 두렵다." 엄천난 분량의 장편소설을 펴냈으니 할 말이 많았을 텐데 - 아니, 오히려 할 말이 없었을라나 - 감상은 짤막하다. 짤막한 문장 속에서 결기가 느껴진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다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다. 오래전 여러 곳에 소설을 투고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했을 때, 작가의 말을 읽으면 위로가 됐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썼는지, 다 쓰고 나서 기분은 어떤지,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작업인지, 거기에 다 적혀 있으므로 위로가 됐다. 정이현 작가의 '작가의 말'을 읽고도 위로가 됐다. 나 역시 이곳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란 것이 애당초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세계에서 함께 두려워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됐다.

 

작가의 말은 아니지만 작가의 말에 버금가는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아직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았는데 - 안 읽은게 한두 권이냐마는 - 핑계를 대자면 마음에 드는 번역이 없어서였다. 몇 번을 읽으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김영하 작가가 번역해서 새롭게 펴낸 문학동네의<위대한 개츠비>에 다시 한번 도전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번역자의 말 때문이었다. 번역자의 말 서두에다 어째서 번역을 하게 됐는지를 써두었는데,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번역이라고 했다. 번역자의 말 제목도 멋지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곳에 대하여'.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욕망대로 움직이고, 결국 서로 어긋난다는 얘기고, 그래서 표적을 빗나가고, 그래도 어딘가에 가서 꽂힌다는 얘기다. 김영하 작가는 그게 문학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 생각에도 그게 문학인 것 같다. 표적에 정확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화살들이 모인 곳이 세상이고, 결국 빗나가는 게 인생이고, 그러나 결국 어딘가에 명중한 화살을 끝끝내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문학인 것 같다. 번역자의 말만 읽었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이미 읽은 것 같다. 번역자의 말이 이렇게 좋으니, <위대한 개츠비>는 당연히 좋을 작품일 것이다,라고 생각만 하고 아직도 읽지는 않았다.

 

이번 달 초에는 <펭귄 북 디자인>을 열심히 읽었다. 평소 펭귄북스에 관심이 많았고, 펭귄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앨런 레인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책을 샀다. 지난해 런던의 전시회에서 앨런 레인의 작품을 보고 난 다음 그의 팬이 돼버렸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커다란 총이 정면을 향하고 있는 표지였는데, 그 작품은 보이지 않더라. 제목이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디자이너 펠햄의 말이다.


"표지에는 반드시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방아쇠는 서점에서 서성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다. 두 번째 방아쇠는 시각적이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는 장치이다. 이 두 가지 방아쇠가 당겨지면 비로소 독자는 책을 집어 들고 구입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이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디자이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소설가에게 하는 말 같았다. 표지 대신에 소설이라는 단어를 넣어보았다. 소설에도 두 개의 방아쇠가 있어야 한다. 서성이는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고, 문학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는 방아쇠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꾸준히 책을 팔아서 작가의 말을 더 풍요롭게 꾸밀 수 있다. (하하하. 공허해지는 웃음). 앨런 레인을 겨냥했던 내 관심의 화살은, 많이 빗나가서 <펭귄 북디자인> 162페이지 펠햄의 말에 명중했다. 어디든 꽂히기만 하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김중혁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외 관심사가 워낙 많은 다재다능 소설가.

웹디자이너, 여행잡지 기자를 거쳐 2000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8년 단편 <엇박자 D>로 제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6년 소설집 <펭귄뉴스>, 2008년 <악기들의 도서관>을 펴냈다. 삽화가, 카투니스트로도 활약 중이고, 소설가 임연수, 시인 문태준과 함께 김천 3인방으로 통한다.

 

 

이달에 산 책

<제국의 통로> 조지 린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박천홍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쾅! 지구에서 7만 광년>마크 해던

  

 

 

BRUT 브뤼:트 Vol.012 (2010.05)

Column.zip / Book : 책과 연관된 여러 가지 쓸모없는 이야기들.

 

Posted by 크리에이티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Arthur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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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으로 소통하는 웹카투니스트

TBWA KOREA 제작8팀 카피라이터 '루나파크(Luna Park)' 홍인혜 차장


인터뷰·정리 | 김보경 기자


자신만의 완생(完生)을 향해 한 수, 한 수 나아가는 미생(未生)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도, 계속되는 야근에 지친 삶 속에서도 눈을 번뜩이고 몰두하게 만드는 활력소는 누구에게나 있다. 일상에 지쳤을 때 힐링이 되어주는 나만의 활력소가 있어 그 다음 한 수를 준비하게 해 준다. 광고인들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광고人 코너, 앞으로는 광고인들의 삶 속에 보다 깊숙이 파고 들어가 광고인들의 크리에이티브 원동력을 찾아보고자 한다. 12월호에서는 웹카투니스트 ‘루나파크’로 활동하는 TBWA KOREA 홍인혜 차장을 만나보았다.


카피라이터로서는 어느덧 차장이라는 책임의 무게가 느껴지는 자리에 왔지만,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루나파크」에 거주하는 「사춘기 직장인」인 홍인혜 차장.

어느덧 8년이란 시간동안 웹카투니스트로 활동해왔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그녀와의 인터뷰를 위해 TBWA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카피라이터 혹은 만화가였다는 그녀. 본래부터 예체능과 창작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카피라이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웹툰 붐이 일었어요. 특히 마린블루스, 스노우캣, 낢 이야기 같은 생활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죠.”


개인 생활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녀는 오히려 그래서 더 편했다고 답한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있는 픽션 만화보다는 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만화로 포스팅 하는 블로깅 같은 개념이라 더 접근하기 좋았던 것 같아요.”

“회사 사람, 가족 모두가 독자이기 때문에 너무 내밀한 이야기들은 걸러지기는 해요. 그렇지만 일기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에요. 어디 연재하는 만화가 아니니까요. 더 과장해서 웃기게 하거나, 없는 얘기를 지어낼 필요는 없죠.”

“게다가 주변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요. 다들 한 번이라도 더 만화속에 등장하고 싶다고.”


포털 중심의 웹툰 생태계에서도 ‘루나파크’는 여전히 개인 홈페이지에기반을 두고 있다.


"포털의 영향력이 엄청나기는 해요. 접근성이 훨씬 높아서 몇십만 건의 조회수가보장이 되니까요. 홈페이지는 약점이 많아요. 도메인을 직접 입력해야하고, 블로그처럼 편집 기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사진한 장 올리는 것도 번거롭죠. 방문자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지만, 그래도 홈페이지가 ‘내 영토’라는 마음이 들어서 놓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시대에 발맞추어 올 2월부터 네이버 스타일+에서 ‘루나의 옷걸이 통신’을 연재중이다.


“같이 홈페이지를 꾸리던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SNS 등으로 많이 옮겨갔고…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방문자들이 자꾸 줄어드니까 저도 포털로 이동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찰나 네이버에 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마침 쇼핑과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서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죠.”

광고와 만화, 비슷한 듯 다른 두 분야. 두 가지 전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모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았고, 그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 비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명한 얘기지만 좋아하는 일 찾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웹툰과 광고는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 광고 할 때 항상 공감대, 인사이트를 찾잖아요. 생활만화에서도 모두가 공감하지만 깨닫지 못하고있던 부분을 캐치해서 긁어줬을 때 재미있다는 평을 듣죠. 예를 들어서 사근사근 얘기하던 친구가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으면 ‘엄마랑 통화하는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 처럼요.”


고된 직업으로 손꼽히는 광고를 하면서도 또 다른 창작에 열중하는 그녀.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창작의 기쁨’을 누리는 그녀의 아이디어 원천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창작인들은 직접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들 하시겠지만, 저는 인터넷에서 많이 아이디어를 얻어요. 혹자는 비평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게 지금 세대의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온갖 사이트를 떠돌아다니고, 만화책도 많이 봐요.”


8년간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갑’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꼽았다. 최근 갑을관계가 이슈가 돼서 만화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그런 의도가 담긴 에피소드는 아니었는데 얼마 전에 갑을관계 이슈 때문에 만화가 부각이 됐어요. 광고주 담당자님들도 보시고 자기 얘기냐고 물어보기까지 하셨어요. 그냥 일반적인 세태를 꼬집은 거라 광고계동향 독자들도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그녀는 벌써 「루나파크」, 「루나파크(사춘기 직장인)」,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3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는 3년 전 카피라이터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던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너무 많은 걸 쏟아내서 스스로가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 떨어지고 고갈되면 난 무얼 먹고 사나…하는 생각도 들고. 스스로를 채우려고 런던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고, 엄청나게 많은 고뇌가 있었어요.”

“런던에서도 좋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가기 전에는 마냥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혼자 사는 것도, 장기 여행도 처음인데 낯선 도시였던지라 힘든 면도 많았죠. 그래도 런던 여행에서 얻은 게 있어요. 나름 웹툰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어가며, 회사에서도 연차가 쌓여가며 나름의 우쭐함과 자만심이 있었는데, 런던에서 초연하게 됐어요. 외국에서는 제가 어떤 만화를 그렸는지, 어떤 회사에서 어떤 광고를 만들었는지 아무도 관심가지지않으니까요. 홈페이지 관리라든가 집착하던 일들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지금이 아니면 안됐던 그 때 그녀는 훌쩍 런던으로 떠났고, 초연함을 갖추고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좋아하는 ‘광고’와 ‘만화’를 양손에 잡았다. 이루지 못한 것에 괴로워 할 필요 없다. 앞으로 하나씩 이뤄나가면 되니까.

모든 광고인들이 지금이 아니면 안될 일을 찾고, 행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야기는 루나파크(http://lunapark.co.kr)에서 만나볼 수 있다.



창작으로 소통하는 웹카투니스트 - 루나파크(Luna Park) 홍인혜 인터뷰.


창작으로 소통하는 웹카투니스트 - 루나파크(Luna Park) 홍인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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